요가쿨라는 매트위에서의 요가 수련과 우리의 삶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가는 경험하는 것이지 요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일상에서도 매트안에서의 집중과 현존함을 상기시키며 살아간다면 매순간이 깨어있음과 수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요가쿨라는 힐링요가, 인요가, 프리야 빈야사요가, 아쉬탕가 요가, 마이링요가, 임산부 요가, 필라테스 등 다양 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몸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 몸에 꼭 맞는 요가를 제시하는 1:1 PT 수업과 그룹레슨이 가능하며 다양한 단체와 기업체로 출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VIEW PROGRAMS요가쿨라의 수업은 유쾌합니다. 쿨라를 찾은 모든 분들이 밖에서의 복잡한 일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한시 간의 수업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집중하고 요가를 정말 즐겁고 기분 좋은 것으로 느끼신다면 그것으 로 충분합니다.
VIEW PROGRAMS나쁜습관으로 인한 자신의 몸의 현재 상태를 느끼고 안전한 방법으로 아름답고 균형잡힌 건강한 몸으로 바꾸고 수많은 관계속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의 통제력을 잃게 되어버린 우리에게 요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리고 어느덧 너그러워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 다. 요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행복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VIEW PROGRAMSGlobal Yoga Mala Project, Korea Yoga Conference, TTC&workshop
산스크리트어로 “환영하다. 받아들이다”는 뜻을 가지 고 있습니다. 환영한다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누군가 나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내게 왔든, 있는 그대로, 그 상태 그대로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말입니다.
본래 선한 사람도 본래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어떤 환경이나 어떤 상황 에 따라서 한쪽으로 치우 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사람의 본성 ,아트만, 신성, 에너지…….
요가는 수련이고 수련은 몸으로 하는 아사나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수련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수련이든 마음의 수련이든 개인적으로 하루하루 살면서 주변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 는 모든 것을 수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아사나를 아주 잘 한다고 해서 마음의 아사나가 완벽 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요가수련을 하는 우리보다 요가를 모르지만 더 영적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 분들은 요가 아사나를 모르고 균형 자세는 못 하지만 마음의 균형을 완벽하게 잡고 더 착하고 더 정직하고 더 진실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 며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트에서 수련하는 우리들 보다 더 Yogi 요기다운 모습으로 살아 갈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수련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장 할 수 밖에 없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자신을 단련하는지에 따라서 본인의 성장의 속도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인도신화 ‘라마야마’는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슈누신 ‘라마’는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내려와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 '시타'와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타'를 사모하던 ‘라바나라 ’라는 나쁜 악마가 '시타'를 납치해서 멀고 먼 바다 건너 섬(스리랑카)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라마'는 사랑하는 '시타'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가는 도중에 원숭이 군대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원숭이 군대의 용맹한 장군인 '하누만'의 도움으로 무사히 시타를 구출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라마'와 '하누만'은 '시타'를 구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했고 목숨을 건 '하누만'의 도움으로 '라마'는 아주 힘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하누만'은 '라마'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합니다. '하누만'은 왜 그토록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라마'를 돕고 자신의 일처럼 '라마' 곁에서 목숨 바쳐 충성을 했을까요? '하누만'은 세상에 감춰진 두 가지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라마'가 신(비슈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사실 하나는 '라마'가 바로 '하누만'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가쿨라의 ‘Priya 프리야’ 철학이 나옵니다. 우리는, '라마'는 바로 우주고 '하누만'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는 우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성이 어렵고 어색하다면 어떤 힘, 에너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이 신성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내 곁에 있는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사람뿐만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작은 동물에서부터 더 작은 나무, 풀 한 포기에도 돌멩이 하나에도 어떤 신성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신성은 나와 다른 것이 아니고 같은 것입니다. 신성이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모든 존재하는 것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닙니다. 다른 말로 나는 너이고 너는 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우주는 그냥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그냥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 그래도 좋겠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그냥 존재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 행위에 따른 결과가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라면 지금 현재의 움직임과 생각은 다가올 시간의 내 모습입니다.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가르치는 내용이고 라마야마에서 '라마'와 '하누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우파니샤드의 모든 가르침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웃을 사랑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프리야 요가철학은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수련하고 깨우치는 요가입니다. 내가 너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바로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수련을 통해서 깨우쳐야합니다.